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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족신탁에서 수탁자의 이익향수금지와 그 한계

법무법인 여온조회 6

1. 가족신탁의 장점이 오히려 법적 위험이 된 사례

가족신탁은 가족관계의 특수성을 재산관리와 승계의 구조에 반영할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다. 고령의 부모가 생전에는 신탁재산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누리고, 사후에는 자녀가 재산을 승계하도록 정할 수 있다. 자녀 가운데 한 사람이 부모를 위하여 재산을 관리하다가 부모 사후에 그 재산을 최종적으로 취득하도록 설계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가족이 직접 수탁자가 되면 금융기관에 지급할 신탁보수를 줄일 수 있고, 가족의 사정과 위탁자의 의사를 잘 아는 사람이 재산을 관리한다는 이점도 있다.

그런데 대법원 2024. 4. 16. 선고 2022다307294 판결은 이러한 간명한 설계에 제동을 걸었다. 위탁자를 생전수익자로, 수탁자인 자녀를 위탁자 사망 후의 유일한 수익자로 정한 유언대용신탁에서, 대법원은 사후 부분이 신탁법 제36조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다만 생전의 자익신탁 부분은 분리하여 유효하다고 보았고, 위탁자의 사망으로 그 유효한 신탁이 종료하면 잔여재산의 귀속절차가 진행된다고 하였다.

이 판결은 이미 제3회 칼럼에서 살펴본 것처럼 등기실무에도 직접 반영되어 있다. 문제는 그 영향이 한 사건의 등기 가능 여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족 중 믿을 만한 한 사람에게 관리와 최종 승계를 함께 맡기려는 전형적인 수요가 법률상 위험한 설계로 분류되면서, 가족신탁의 이용 범위 자체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판결 요지의 반복보다, 제36조가 어디까지 적용되어야 하는지, 그 위반의 효과를 반드시 무효라고 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현행 실무에서 어떤 설계가 필요한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2. 이익향수금지의 취지와 가족신탁에서의 한계

신탁법 제36조는 “수탁자는 누구의 명의로도 신탁의 이익을 누리지 못한다. 다만 수탁자가 공동수익자의 1인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한다. 수탁자는 타인의 이익을 위하여 신탁재산을 관리·처분하는 사람이다. 그런 수탁자가 동시에 신탁의 유일한 이익귀속자가 된다면, 누구의 이익을 위하여 재산을 관리하는지 알기 어렵고 수탁자의 권한을 감독할 수익자도 사라진다. 제36조가 자기거래 금지나 이익상반행위 금지와 함께 수탁자의 충실의무를 구체화하는 규정으로 이해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 원칙의 취지가 분명하다고 하여 그 적용범위와 위반 효과까지 자명한 것은 아니다. 먼저 수탁자가 신탁으로부터 어떠한 경제적 이익도 취득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수탁자는 정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고, 공동수익자 중 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신탁이 종료한 뒤 남은 재산을 받는 귀속권리자로 수탁자를 지정하는 것까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대상판결도 수탁자를 잔여재산의 귀속권리자로 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았다. 결국 금지되는 것은 수탁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결과 그 자체가 아니라, 신탁이 존속하는 동안 수탁자가 유일한 수익자로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수탁권한을 행사하는 구조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가족신탁에서 특히 중요하다. 가족신탁에서는 수탁자, 돌봄 제공자, 최종 재산승계자가 동일한 경우가 적지 않다. 가족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충실의무의 통제를 완화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수탁자와 최종 승계자가 같다는 외형만으로 위탁자의 전체 계획을 무효로 돌리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생전에는 위탁자가 수익자로 존재하여 수탁자의 관리행위를 통제하고, 위탁자 사망과 동시에 수탁자가 최종적으로 재산을 취득하도록 한 경우에는 ‘수탁자가 유일한 수익자인 신탁이 계속 존속하는 기간’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특히 대상 사건의 계약은 사후수익자를 ‘신탁 종료 후 신탁재산의 귀속권리자로서 신탁원본을 받을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정하였다. 이러한 문언이라면 그 지위의 실질은 신탁 존속 중 이익을 향유하는 수익자라기보다 신탁 종료 후 잔여재산을 받는 귀속권리자에 가깝다. 명칭을 ‘사후수익자’라고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제36조의 단독수익자로 단정하기보다는, 신탁의 종료시점과 재산귀속의 시점, 사후수익자에게 부여된 구체적 권리의 내용을 함께 해석할 필요가 있었다.

3. 제36조 위반의 효과는 언제나 무효인가

대상판결의 가장 큰 문제는 제36조 위반에서 곧바로 일부무효라는 결론으로 나아갔다는 데 있다. 신탁법 제36조는 수탁자의 이익향유를 금지하지만, 그 위반 효과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신탁법 제5조 제2항은 목적이 위법하거나 불능인 신탁을 무효로 하고, 같은 조 제3항은 신탁 목적의 일부가 위법하거나 불능인 경우 원칙적으로 나머지 목적을 위한 신탁은 유효하다고 정한다. 그러나 수탁자와 유일한 수익자의 동일성이 생긴다는 사정이 곧바로 신탁 ‘목적’의 위법을 의미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신탁의 본질은 수탁자가 자신과 구별되는 수익자 또는 신탁목적을 위하여 재산을 관리하는 데 있다. 따라서 수탁자와 유일한 수익자가 완전히 동일해지면 신탁을 계속 존속시킬 기초가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보다 자연스러운 법적 효과는 처음부터 그 약정을 무효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성이 실제로 발생한 때 신탁이 종료한다고 보는 것이다. 채권과 채무가 동일인에게 귀속되면 혼동으로 소멸하는 것과 유사하게, 관리주체와 유일한 이익귀속자가 합쳐지는 시점에 신탁관계가 더 이상 존속할 필요를 잃는다는 설명이다.

무효와 종료는 실무상 결과가 크게 다르다. 무효는 당사자의 설계가 처음부터 법질서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평가이고, 일부무효론은 하나의 유언대용신탁을 위탁자의 사망 전후로 나누어 그 효력을 달리 보게 한다. 반면 종료론은 위탁자의 생전에는 신탁이 유효하게 존속하고, 동일성이 발생한 시점부터 종료 후의 재산귀속관계로 전환된다고 본다. 신탁법 제104조 제4항에 따르면 신탁이 종료한 뒤에도 잔여재산이 귀속권리자에게 이전될 때까지 그 잔여재산은 법정신탁으로 존속한다. 따라서 종료론은 재산관리의 공백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제36조의 취지를 관철할 수 있다.

신탁법 제5조 제3항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부 목적이 위법하더라도 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목적을 위한 신탁은 원칙적으로 유효하고, 다만 그 존속이 위탁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경우에 전부 무효가 된다. 이는 위탁자의 의사와 신탁의 존속을 가급적 보존하려는 규정이다. 가족신탁에서 사후의 최종 승계가 핵심 목적이었다면, 사후 부분만 떼어 무효로 하고 생전 부분만 남기는 것이 오히려 위탁자의 전체 의사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무효 판단에 앞서 계약 해석과 종료 법리를 통하여 위탁자의 계획을 가능한 범위에서 실현할 수 있는지를 먼저 검토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판결이 가족신탁 설계에 가져온 위축

대상판결 이후 실무가는 수탁자인 자녀를 유일한 사후수익자로 정하는 설계를 피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가족이 원하는 경제적 목적은 같더라도 계약구조는 더 복잡해진다. 별도의 사후수익자를 두거나, 공동수익자를 추가하거나, 수탁자와 최종 승계자를 분리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전문수탁자를 선임하면 신탁보수가 발생하고, 다른 가족을 형식적으로 공동수익자에 포함시키면 장래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신탁의 성립만을 위하여 명목상의 공동수익자를 두는 것은 제36조 단서를 잠탈한다는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가족신탁 설계의 실질보다 명칭과 서식이 앞서게 된다는 점이다. 위탁자의 의사는 ‘내가 사망할 때까지는 관리해 주고, 사망하면 네가 가져라’라는 단순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사후수익권으로 표현하면 무효 문제가 생기고, 종료 시 잔여재산의 귀속으로 표현하면 허용될 수 있다. 두 구조의 경제적 결과가 유사함에도 법률효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이는 제36조의 규율 목적을 넘어 계약서 문구 선택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가족신탁을 낯설고 위험한 제도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다만 현 단계에서 판결을 무시한 설계는 가능하지 않다. 가족신탁을 활성화하려면 판결에 대한 이론적 비판과 별도로, 현재의 등기실무를 통과하고 사후 분쟁을 줄일 수 있는 구조를 선택해야 한다. 수탁자가 장래 재산을 취득하도록 하려면 그를 유일한 사후수익자로 정하기보다, 신탁 종료사유를 위탁자의 사망으로 명확히 하고 수탁자를 잔여재산의 귀속권리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할 수 있다. 이때 생전수익권, 종료사유, 귀속권리자, 귀속절차와 기간을 각각 구분하여 기재하여야 한다. 단순히 ‘사후수익자’라는 표제 아래 종료 후 재산귀속까지 함께 규정하면 다시 해석상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신탁을 위탁자 사후에도 계속 존속시켜 재산을 장기간 관리할 필요가 있다면 다른 설계가 필요하다. 예컨대 미성년자나 장애가 있는 가족을 수익자로 하고, 수탁자인 가족에게는 정당한 보수만 지급하거나 공동수탁자·신탁관리인 등 감시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수탁자가 경제적 이익도 함께 누려야 한다면 실질적인 공동수익자를 두되 각 수익자의 권리내용과 이해상반 상황의 의사결정절차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수탁자 교체조항과 후임수탁자 지정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핵심은 제36조 단서를 형식적으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신탁 존속 중 수탁자의 권한을 누구의 이익을 위하여, 누가 통제할 것인지 분명히 하는 데 있다.

5. 등기실무에서 확인할 사항

등기실무에서는 설계 단계와 이미 등기가 마쳐진 경우를 나누어 보아야 한다. 먼저 생전수익자를 위탁자로 하고 수탁자를 유일한 사후수익자로 정한 신탁등기 신청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부동산등기선례 제9-339호는 이러한 신탁이 제36조를 위반한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대상판결은 그 법적 근거를 강화하였다. 등기관은 실질적 분쟁을 심리하는 기관이 아니므로, 계약서와 신탁원부의 문언에서 제36조 위반 구조가 드러나면 신청이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같은 경제적 목적을 신탁 종료 후의 잔여재산 귀속으로 구성하는 것은 가능하다. 대상판결은 수탁자를 귀속권리자로 지정하는 것 자체는 허용된다고 명시하였다. 따라서 계약서에는 위탁자 사망을 신탁 종료사유로 정하고, 수탁자를 귀속권리자로 분명히 표시하며, 종료 후 소유권이전등기와 신탁등기 말소에 필요한 협력의무를 구체화하는 것이 안전하다. 수익자와 귀속권리자는 법적 지위와 권리발생 시점이 다르므로 신탁원부에서도 양자를 혼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미 수탁자를 유일한 사후수익자로 하는 신탁등기가 마쳐졌다면, 위탁자 사망 후 사후수익자 명의로 곧바로 수익권 이전을 전제로 처리해서는 곤란하다. 부동산등기선례 제202404-1호와 대상판결의 논리에 따르면 유효한 생전 자익신탁은 위탁자 사망으로 종료하고, 계약에서 귀속권리자를 정하였다면 그 사람이 신탁재산 귀속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의 등기권리자가 된다. 귀속권리자를 정하지 않았다면 잔여재산은 생전수익자인 위탁자에게 귀속되어 상속재산에 편입되므로 위탁자의 상속인이 등기권리자가 된다. 결국 사후수익자 조항과 별도로 귀속권리자 조항이 있는지 여부가 등기 결과를 좌우한다.

이 때문에 가족신탁 계약을 작성할 때에는 신탁계약서만이 아니라 신탁원부에 기록될 사항과 사후 등기절차를 함께 검토하여야 한다. 수익자 변경, 위탁자 사망, 신탁 종료, 잔여재산 귀속을 하나의 사건처럼 뭉뚱그리지 말고 각각의 발생시점과 효과를 구분해야 한다. 또한 수탁자가 귀속권리자로서 부동산을 취득하면 형식적인 신탁재산 이전과 달리 실질적인 소유권 취득에 해당하므로 취득세 등 조세문제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6. 나가며

수탁자의 이익향유금지는 가족신탁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그러나 그 원칙은 수탁자가 신탁 존속 중 유일한 수익자로서 아무런 통제 없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 수탁자가 신탁 종료 후 재산을 최종적으로 취득하는 모든 구조를 배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제36조의 적용범위와 위반 효과를 구분하지 않은 채 무효를 넓게 인정하면, 위탁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가족의 사정에 맞추어 재산을 승계한다는 신탁의 장점이 오히려 위축된다.

대상판결은 생전 부분의 효력을 보존하고 수탁자를 귀속권리자로 지정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는 법적 안정성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수탁자와 유일한 사후수익자의 동일성을 일부무효로 처리한 결론에는 여전히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 동일성이 현실화된 시점에 신탁이 종료하고, 그 후에는 제104조 제4항의 법정신탁을 거쳐 잔여재산이 귀속된다고 설명하는 편이 신탁의 구조와 위탁자의 의사에 더 잘 부합한다.

입법이나 판례의 정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실무는 보수적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수탁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면 안 된다’는 단순한 명제로 가족신탁의 가능성을 미리 닫을 필요는 없다. 신탁이 언제까지 존속하는지, 존속 중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수탁자의 권한을 누가 통제하는지, 종료 후 재산이 누구에게 어떤 원인으로 귀속되는지를 나누어 설계한다면 제36조의 취지를 지키면서도 가족신탁의 목적을 상당 부분 실현할 수 있다. 가족신탁의 성패는 결국 사람의 명칭이 아니라 권리와 시간의 구조를 얼마나 정확히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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